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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지게 만드는 것들

BigGun 2008. 8. 11. 01:50
이 글은 2006년 4월 한국이 세계 야구 올림픽에서 선전을 하고 난 후 정부가 선수들에게 선심성 병역혜택을 주자 격분하여 쓴 것이다. 당시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 중이었는데 정말 힘 빠지게 만드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나의 주장은 정당했고 합당했다.

    군대 다녀오면 아저씨 같다고 한다. 군에 오기 전에는 이해를 못했다. '거기 다녀온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어?' 며칠전에 그 차이를 느꼈다. 예전에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해병대 스님이 나왔을 때 별 다른 느낌이 없었다. '저게 해병대구나.' 그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이번에 달마야 서울가자를 보면서 많이 웃었다. 해병대 스님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바로 우리 해병대원들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던 군대 관련 소재들이 이제는 신선한 재미로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군대 나온 예비역에게나 신선한 재미라는 것이다.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남성이거나 아애 군대에 갈 예정도 없는 여성에게는 구질구질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라는게 문제다. 그래도 나는 군에 와서 많은 점을 배웠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가장 친구에게 조차도 육군 입대를 권유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 2년을 헌신봉사한다는 것도 뜻깊다. 지금 아프간에 있는 것도 이러한 것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가끔씩 힘 빠지게 만드는 것들 때문에 군에 있는 것이 회의를 느끼게 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한국야구가 큰 일을 해냈다. 이곳에서 비록 야구경기를 단 한게임도 보지 못했지만 엠파스 문자중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승리의 쾌감을 느꼈다. 한국에서 날라오는 이메일에도 야구 얘기가 대부분이었고 인터넷을 켜기만 하면 이곳저곳 모두 야구판이었다. 월드컵 때 처럼 시원시원한 승리 소식에 자긍심도 많이 느꼈다. 미국을 이겼을 땐 은근히 미군 사이에서 어깨가 으슥하기도 했다. 우스게 소리로 괜히 미군 사이에 가면 헷꼬지 당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군들이 진게 분해서 보복할거라고 놀려대면서 말이다. 선수들도 감독도 참 잘했다. 파랑도깨비 인가? 아무튼 응원도 참 잘했다. 비록 이곳에서는 거창한 응원도 짜릿한 중계도 못 봤지만 한민족이라는 긍지로 파병생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4강 진출 후 국방부와 여당이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이상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빈번한 짓이었다. 그것은 군 미필자에 대한 병역면제처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즐겁한 대가로, 월드컵 16강에 필적하는 야구 월드컵 4강 진출의 대가로, 대한민국 남아라면 꼭 가야하는 가고싶게 만들려고 온갖 투자와 홍보를 아끼지 않는, 너희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칭찬을 끝없이 하면서 등떠미는 군대를 면제시켜준 것이다.

    사실 야구선수 몇명이 군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별 차이는 없다. 일단 내가 군인이고 이미 1년이상 복무했기 때문에 면제 받은게 배 아프거나 부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 선수들이 군에 왔더라도 상무에서 뛰었을 테니까 국방에도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짓들이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복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군인장병의 기를 꺾는다. 잔뜩 '내가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시간 버리는 거 아니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면서 국방을 지키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아무런 백도 능력도 없는 애들이나 가는 거라고 국방부 사람들이, 여당 사람들이 대놓고 말하고 있다. 야구 잘하고 축구 잘하고 발명 잘하고 공부 잘하면 군대에 안와도 된다. 요즘은 잘 통하지는 않지만 돈 많아도 군대 안와도 된다. 군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일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찾아야 한다. 야구 선수가 군에서 2년 썪는 것보다 자기계발하면서 국위선양하면 더 좋은거 아니냐. 그게 전체적으로 더 이득아니냐.'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야구선수만 국위선양하는 것인가. 군 입대를 앞둔 모든 사람들에게 군에 즐거워서 할 일 없어서 입대하냐고 묻는다면 다들 미쳤냐는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다. 군에 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열심히 하던 일들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삶에 익숙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2년간 국가에 대한 신성한 봉사를 위해 입대를 결정했다.

    요즘은 국방부에서 홍보를 정말 체계적으로 한다. 연예인들도 많이 기용하고 언론 플레이도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 최근에는 KFN이라는 국방 전문 채널도 만들었다. 신병 훈련소 화장실에 가면 유명인들이 '군은 좋은 곳이다 참 잘 왔다' 라고 말한 문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갖 군에 들어온 신병들은 이런 문구를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 이렇게 돈과 시간과 공을 들여 노력을 했어도 한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한 사람에게 아주 대단한 상을 주는 양 병역면제라는 '혜택'을 베푸는 순간 '군'은 그저그런 지질이도 복도 없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된다. 이런 짓거리를 군대를 총 지휘한다는 국방부가 주도하고 국정을 정도로 이끌어야할 여당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만약 군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고 싶은 곳이고 '인생의 대학'이라면 야구 4강에 진출시킨 선수들에게 내일이라도 당장 입대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야 했다. GP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신성하고 위대한 임무라면 국위 선양한 야구 선수들에게 특별히 GP에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줬어야 했다. 아무리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대의명분이라는 것, 핵심가치라는 것은 지켜져야 한다. 중심이 흔들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미군기지에 있으면서 느끼는 점은 그들이 이래서 세계 최고의 국방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군이 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이 진정 군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FN을 보면 미국의 온갖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이렇게 외친다. "미국은 당신을 응원합니다." 의무복역도 아니니까 괜히 모병하려고 헛소리하는건 아닐테다. 이곳 군인과 대화하다 보면 약간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군인이라고 하면 싫어한다고 말할 때 미군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오히려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런데서 차이가 생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남들이 인정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억지로, 모두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곳 강당에 붙어있는 커다란 문구가 오늘도 생각을 하게 한다.

    "America solutes to troops" (미국이 당신[군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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