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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BigGun 2008. 12. 17. 08:08
'그들이 사는 세상'을 이렇게 열심히 보고, 이 드라마 때문에 감동하고 함께 울고 웃고 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16부작으로 깔끔하게 끝난 이 드라마는 어떻게 떠나는 뒷모습까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사실 처음부터 이 드라마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제목을 접하게 된 것은 '1박2일'을 보면서 부터. 요즘 KBS가 잘하는게 시청률 높은 방송 중간에 차기작 광고 넣기다. 예전에는 이 방송 끝나고 하는 다음 방송 예고 정도만 내보냈는데, 요즘은 아애 대놓고 광고를 한다. 또 하단에 흰색 자막만 넣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요즘은 자막 크기의 두배쯤 되는 갈색 배경을 깔고 그 위로 아주 자극적인 광고 냄새 풀풀나는 홍보문구가 흘러간다. 이른바 공영방송이라는 KBS도 이 정도니,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드라마국 처럼 방송국들 끼치 피터지게 싸우긴 하나 보다. 이렇듯 내가 유쾌하지 않게 생각하는 중간 홍보로 알게 된 이 드라마는 그 첫인상이 좋을리는 없었다. 게다가 누가 카피를 썼는지는 몰라도, 연출과 작가를 마치 아카데미와 노벨문학상 수상한 거성인양 묘사하고, 현빈과 송혜교의 등장을 마이클잭슨이 잠실 운동장에 나타난 것처럼 써대서 코웃음만 나왔었다. 뭐, 요즘은 MBC, SBS에서 예고편 틀 때 배우보다는 작가 강조하는 트랜드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엄마가 뿔났다' 때가 정말 대박이었다. 김수현 작가 초빙하는데 얼마 썼는지 몰라도 그 이름값 빼먹을려고 온갖 생색을 다 냈었다. 게다가 제목이 주는 이미지도 그저그랬다. '그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누군데? 처음엔 송혜교랑 현빈이라고 해서, 이 두 사람이 배우인줄 알았다. 그래서 배우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SBS '온에어'와 다를게 없었다. 이런 까닭에 드라마를 볼 이유는 더 없었다. 정말 우연히 방송보기를 클릭해서 본게 진정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1회를 보고 나서 바로 한 말은, '이 드라마 망하겠다.'. 이유는 분명했다. 임팩트가 전혀 없었다. 송혜교가 나와도 현빈이 나와도 그저 그랬다. 방송가의 다이나믹한 모습을 담을려고 한 듯한 1회는 온에어와 비교해 봤을 때 현장감이 많이 떨어졌다. 아마 그 거창했던 홍보문구도 여기에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풀 하우스' 이후로 잘 볼 기회가 없었던 송혜교를 드라마에서 만난 반가움 때문에 2부도 봤다. 2부까지 보니까 어느정도 느낌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를 사랑하게 됐다.


    사실 이 드라마는 나름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런 시도는 예전에 MBC의 '소울 메이트'와 견줄 정도다. 다만 이 드라마가 더욱 대단한 것은 이게 저녁 늦게 하는 심야 드라마가 아니라 월화 미니시리즈였다는 것이다. 소울 메이트는 독특한 소재와 캐릭터, 그리고 드라마에 나오는 OST 까지도 지대한 관심을 받았었다. 아마 이 드라마를 아프가니스탄 파병시절 봤었던 것 같다. 시청률은 아주 크게 대박나지 않았지만, 드라마 매니아 사이에서는 상당한 대작으로 꼽힌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매회 주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총 16부가 이어지는 스토리면서도 매 회마다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흘러가는 플롯을 썼다는 거다. 아마 1회가 어색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개는 1회 때 장황하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크게 뻥 터뜨리는 식인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좀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두 배우의 독백이 나온다. 가끔씩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독백은, 솔직히 말하면 너무 현학적이었다. 뭐랄까, 그냥 평범한 사람사는 얘기를 심리학 교수가 나와서 설명하는 꼴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 듯 싶다. 적이네 동지네, 삶이 어쩌구 저쩌구. 송혜교와 현빈이 돌아가면서 하는 이 독백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드라마의 또다른 특징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백미는 캐스팅이었다. 말그대로 완전 호화 캐스팅이다. 배종옥, 김갑수, 김창완 같은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은 다소 송혜교와 현빈의 애기 장난 같은 연기를 좀더 성숙하게 만들어줬다. 아마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은 엄기준일 것이다. 뭐, 다른 배우들은 이미 떠서 연기력 가지고 얘기하는 것에 심드렁할테지만 엄기준은 좀 다르다. 이번에 완전 독특한 캐릭터를 받아서 너무나 잘 소화해냈다. 재수 완전 없는 바람둥이 감독인데, 능력은 많아서 드라마 뻥뻥 터뜨리고 집안은 정치명가고 게다가 알고보니 사랑에도 지고지순한 매력남이라는 이런 황금 같은 배역을 받은 게 그에게는 올해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이름을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서 정말 멋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 사람들은 이들이다.


    사실 초반부에 송혜교 대사소화 문제로 시끌시끌 했는데, 알고보면 송혜교 문제는 아니다. 솔직히 우리는 최지우와 권상우 덕택에 이런 혀짧은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았는가. 가끔씩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서 돌려서 보기도 했는데, 비단 송혜교 장면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작가가 너무 어려운 말을 아니면 너무 세련된 말을 쓰느라 대사 전달이 안된 것이다. 평소 쓰는 표현을 안쓰다 보니까 시청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송혜교가 화만 잘 낸다는 비판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것 같다. 원래 송혜교 캐릭터가 그렇다. 애교 많고 화 잘내고 당당하고, 딱 똑똑한 부잣집 외동딸 스타일이다. 그런면에서 송혜교는 잘 해낸 것이다. 현빈도 약간 아쉽긴 했지만 선방했다. 현빈은 지금까지 딱 이런 이미지를 이어왔다. '김삼순' 때나 '백만장자의 첫사랑' 때나 약간 삐딱선을 타는, 하지만 젠틀하고 부잣집 도련님 같은 모습을 연기해 왔는데, 이번에도 딱 그랬다. 농부의 자식으로 나온다지만 사는 곳이나 소비 행태를 보면 예전 작품과 별반 차이 없다. 그런데 너무나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이미지를 지키려는 듯한 모습 때문에 약간은 아쉽기도 했다. 좀더 과격하고 박력있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현빈의 매력인데. 너무 착하게, 마치 초등학생한테 하는 듯한 대사가 현빈의 전매특허 아니겠는가. 중간쯤에 송혜교가 양수경하고 키스를 너무 자주한다고 느꼈는데 알고보니 현빈하고는 대박이었다. 요즘 드라마가 대담해졌다고 하지만은, 두 사람이 잠자리하는 묘사도 과감없이 나오고 마지막회에 두 사람이 키스한 장면을 모아서 보여줬는데 대충 봐도 6, 7번이 넘었다. 벤에 앉아서 자기 장면에 찍고 들어가야할 듯한 두 배우가, 감독자리에 앉아서 큰 소리로 '커트'를 외치는 장면은 애들이 소꿉놀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름 귀엽고 애착이 갔다. 현실에서는 감독이 현빈처럼 잘 생기지도 송혜교처럼 이쁘지도 않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OST다. 인기 프로듀서 김형석 씨가 열심히 만든 것 같은데, 장면하고 너무나 잘 어울렸다. 요즘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수 십대'에서 '수 천대'로 증가한대는 그들이 사는 세상 OST 때문이다. 그 만큼 이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테다. 정말 노래를 잘 만들었다. 메인곡인 김조한의 '처음부터 너야'를 비롯해, 성시경의 '연연', 소야의 '사랑인가요' 세 곡이 완전 홈런을 쳤다. 이 곡 말고도 경쾌한 분위기 때 나오는 포카리스웨터 광고 음악 표절 시비를 받을 법한 노래와 소야의 또 다른 노래(제목을 까먹었다) 역시도 드마라와 혼연일체가 됐었다. 더 좋았던 것은 다양한 분위기의 편곡으로 말 그대로 OST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2곡이나 사줬으니까, 나도 음반 판매에 어느정도 기여한 셈이다.


    16회만 보여준 것이 아쉽긴 하지만 정말 결단력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싼 배우들에, 유명한 연출과 작가까지 썼으니 연장방송이 쉽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중간에 인터넷이 끊겨서 6부 정도 못 봤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보고싶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각 회가 테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못 봤다고 해서 후반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 역시 이 드라마의 매력이었던 것 같다. 시청률 전쟁이 한창인 드라마국에서 벌어지는 다이나믹한 사람 사는 이야기와 그 중심에서 만들어가는 두 젊은 감독의 사랑 이야기. 두 이야기가 너무나 잘 섞여서 아주 가끔씩 느끼는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다만 중간중간 배우들이 내뱉는 과감한 욕설은 현장느낌을 살리고자 쓴 것 같지만 가끔씩은 불필요하기도 했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비친 시사적이고 풍자적인 소재들 역시도 약간의 논란 거리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참 잘 만들었다. KBS 한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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