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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칼럼

멀리서 바라보기

BigGun 2014. 1. 5. 21:54
칼럼을 시작하며.

 

2년 전쯤  블로그 주소를 익스플로러 주소창에 쳤는데 접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블로그 도메인 사용기간이 종료된 것이었지요. 그래서 매년 갱신하지 않게 3년치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블로그에 접속이 안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에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트랜드가 블로그에 장황한 글을 올리기 보다는 SNS에 짧지만 임팩트있는 글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혼자 볼 글이라면 일기장에 적으면 될 것이고,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봐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블로그 보다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에는 홈페이지라는 개념이 어렵다고 신문에 인터넷 관련 기사가 나오면 '홈페이지'의 정의를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뒤 인터넷이 보편화 되자 개인 미디어라고 불리는 '블로그'가 나왔고, 아마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 이라크 전쟁을 할 때 그곳의 생생한 소식이 블로그에 올라오면서 블로그라는 말이 전세계적으로 통용화 되기 시작한 것 같네요. 그리고 나서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140자 혹은 그 이하, 아니면 몇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부터가 깊게 생각하고 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고, 몇 되진 않지만 '독자'를 고려하고 글을 쓰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블로그 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위해, 누가 보든지 말든지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매주 1개의 글을 올리겠다는 새해 결심을 몇 년째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만큼은 꼭 실천할 생각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솔직한 저의 생각을 남기는 칼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에 좋은 '전통'이 생겼다. 처음엔 좋은지 몰랐는데 몇 년 지나고 나니까 좋은 행사인 것 같아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새해 일출맞이다. 고양시에는 행주산성이라는 역사적인 유적이 있는데, 고양시의 전통적인 행사는 주로 이곳에서 하는 편이다. 매년 1월 1일 행주산성 꼭대기에서 일출맞이 행사를 성대하게 한다. 공무원들이 나와서 따뜻한 음료도 나눠주고 전통놀이 부스도 만들어 놓고 사물놀이패가 신명나게 공연도 한다. 당연히 정치인들의 새해 인사말도 빠지지 않는다. 어쨌든 새해 첫 날 행주산성에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가 해가 뜨는 장면을 보는 기분은 꽤 좋다. 멀리 정돈진을 가거나 북한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것이 기쁘고 내심 자랑스럽기도 하기에 매년 찾게 되었다. 그렇게 행주산성 일출맞이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신선설농탕'에서 따뜻한 설농탕 한 그릇을 하는 것이 새해맞이 행사의 마무리이다. 궂이 신선설농탕에 가는 이유는 24시간 영업을 하고 주차장이 넓기 때문이다. 그리 비싼 음식도 아니고 딱히 맛집이라고 하긴 어려운 곳이지만 추운 새벽 얼굴이 땡땡 언 상태로 행주산성에서 돌아온 상태이기 때문에 따뜻한 고기국물이 주는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국물로 몸을 녹이며 그 때쯤이면 어느 정도 떠오른 해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한 해 결심을 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작년에는 해맞이를 하지 못했다. 눈이 많이 내려서 해맞이는 커녕 운전이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전해인 2012년 새해에는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그 전에 많이 내렸었고 1월 1일 당일 구름이 낀다는 일기예보 탓에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행주산성을 찾아 겨우 해를 보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올해는 눈은 커녕 구름도 없이 맑은 날씨가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떴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 없이 새벽 6시 30분에(고양시 기준 7시 40분 일출예정이었다) 집을 나서 행주산성을 향했는데 이런 맙소사. 행주산성에 들어가는 길 초입부터 도로정체가 장난이 아니었다. 일기예보는 우리 집만 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시간을 잡고 정동진이나 산 정상에도 올라가는데 몇 십분 거리에 있는 행주산성에 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거기에다가 날씨까지 맑다고 하니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한 번쯤 욕심낼 만한 행사이기도 하고. 제작년과는 완전 상황이 달라 행주산성 입구 훨신 전부터 자들이 노상주차 되어 있었고, 주요 골목에는 경찰들이 서서 진입을 막고 있었다. 이미 차들이 꽉 차서 더이상 차를 세울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어쩔 수 없이 행주산성 입구를 지나쳐 다시 큰 길로 나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채 일산의 명산 '정발산'으로 향했다. 물론 이곳 역시도 많은 이들이 일출을 보기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행히 판단을 빨리한 덕분에 해돋이를 실시간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맞이를 하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나서 전통대로 신선설농탕 집을 향했다. 주차장은 평소보다 번잡하긴 했지만 주차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매장에 들어가 보니 홀은 손님으로 가득차 있었고, 몇몇 자리는 손님은 없지만 치우지를 못해서 그릇들만 남겨져 있었다. 우리 가족 뒤로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홀에 몇명 있지 않은 종업원들은 기다리는 손님 번호표 나눠주랴 서빙하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손님들이 반찬을 더 갖다 달라고 울리는 벨 소리에 매장 입구에서 보채는 아이들 소리에 금새 난리통이 되 버렸다. 심지어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던 어떤 아저씨는 앉아 있는 손님들도 못챙기면서 왜 계속 손님을 받느냐며 역정을 냈다.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날 가게에 있던 손님들의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도 10여분을 기다린 후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주문을 받으러 오기까지 10분이 걸렸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깨끗이 닦이지 못했고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물수건으로 테이블을 정리했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는데도 20분 정도가 걸렸다. 다행히 설농탕의 질은 떨어지지 않아서 따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매장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편하게 식사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먹고 나왔다.

 

그런데 아타까운 것은 정말 손님이 한 명도 앉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일손이 부족해서 치우지 못하고 있는 테이블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2명 정도의 직원이 더 있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손님맞이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많은 손님을 받아서 매출도 높였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휴일 수당을 주더라도 그것이 남는 장사였다. 혹자는 손님이 미어터지는 상황인데 왠 매출 걱정이냐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손님의 수에 질려서 발길을 돌린 사람들, 기다리면서 불만을 갖게 된 사람들, 테이블에 앉았지만 수십분씩 음식을 기다리며 지친 사람들은 이 가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도 새해 첫 날 부터 말이다. 물론 손님이 줄서있는 상황이기에 그 가게의 그날 매출은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비용의 관점으로 보자면 너무나 많은 것을 손해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직원들의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침착하게 서빙을 하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 없는 서비스로 인해 최소한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그래서 더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이런 종업원 몇 명만 더 있었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저명한 프랜차이즈 업체 사장이 토크쇼에 나와서 식당의 맛은 성공을 좌우하는데 30% 정도라고 했다. 나머지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무려 분위기가 70%를 차지한다. 못 믿겠다고? 만약 가게에 거미줄이 쳐있고 주인은 퉁명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던지듯 서빙한다고 해보자. 과연 이 식당에 찾을 사람이 몇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그런 식당을 많이 찾게된다. 욕쟁이 할머니 집이다. 가게 인테리어도 우중충하고 주인 할머지는 툭하면 '썩을것'이란 말을 달고살고 서빙은 형편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맛집이라 엄지를 치켜올리며 또 찾는다.

 

유명한 맛집은 당연히 손님이 많아서 기다리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정말 경영을 잘하는 곳은 기다리는 손님에게도 멋진 추억을 선물한다. 기다리는 공간에 모닥불을 피워둔다든지, 커피 한잔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든지, 근처에 있더라도 대기줄을 놓치지 않도록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 것 등등. 아마도 신선설농탕 집도 직원 한명이 입구에 서서 대기표를 전해 주면서 따뜻한 육수 국물을 선사했다면 손님들이 한시간을 기다렸다 한 들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왜 설농탕 주인이 일출을 보고 오는 손님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식당에서 줄서고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은 거의 99% 행주산성이나 정발산 같이 일출을 보고 나서 아침 허기를 채우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휴일에 배고프다고 근처 오피스텔에서 슬리퍼 신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올해 1월 1일 같이 날씨가 좋다고 대대적으로 예보까지 되었다면 행주산성은 물론이고 작은 언덕배기에도 새해 첫 해맞이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 이후에 따뜻한 국물을 찾아 이곳 식당을 찾을 손님은 평소의 몇배에 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곳은 24시간 운영되는 설농탕 집이다. 아마 매니저는 뉴스는 물론이고 동네 돌아가는 소식도 듣기 어려울 것이다. 하루종일 밀려드는 손님 상대하기도 힘들테니 말이다. 그리고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새해 첫날은 가족들과 보내라고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두고 휴가를 주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제비뽑기를 통해 일을 하게된 직원들을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본인 조차도 오늘 만큼은 부매니저한테 오후 장사를 넘기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너무나 이상적인 추측이긴 하지만.

 

우리 집이 매년 일출맞이를 하고 설농탕 가게를 찾아서 내 눈에 유난히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그 식당은 그 날 아침 '애매하게' 영업을 하므로써 득보다 실이 많았다. 만약 매니저가 직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면 과감히 1월 1일에 휴무를 하는 편이 낳았다. 물론 찾아온 손님들은 실망을 했겠지만, 오랫동안 남을 안좋은 기억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직원들 휴가를 보내기 보다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나서 직원들에게 큰 선물을 주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 날 설농탕 가게 직원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었다. 평소처럼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다만 수요예측을 하지 못해 많은 손님들에게 실망감을 준 것 뿐이다. 24시간 설농탕 끊이는데만 집중하지 않고 주변을 바라봤다면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게가 위치한 고양시에서 매년 행주산성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고,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산주민들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대형식당이 이 가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좀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것이다.

 

우리도 이런 실책을 범한다. 아니 실책을 범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태반일 것이다. (아마 아직도 설농탕 가게 매니저는 왜 손님이 많이 왔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원래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보다 그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훈수가 좋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넓게 바라보지 못한다. 그 순간 순간을 해결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좀더 큰 호흡을 가지고 멀리 그리고 넓게 바라본다면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무를 보기 보다는 숲을 보라는 선조들의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큰 그림, 큰 흐름을 읽고 움직이는 자를 하루살이 처럼 사는 이들이 이기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이런 까닭에 나는 매년 말에 휴가를 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별히 해외여행을 가거나 레저를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적한 곳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에는 어떻게 살것이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머리를 비우며 크게 스케치를 하는 수준이다. 그런 스케치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꼼꼼하게 채색된다. 일 년동안 번잡하게 변한 도화지를 찢어 버리고 새 도화지를 펼치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올 한해는 나무를 열심히 보면서도 숲을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갖아야 겠다도 새해 벽두에 결심해 본다. 어쨌든 설농탕 한 그릇 먹으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주인장한테 감사인사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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