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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소중함을 느끼다

BigGun 2008. 6. 4. 04:32
2004년 2월 22일, 엠파스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군입대 전에는 엠파스 블로그를 이용하곤 했지요. 특별히 관리 하지 않았지만 문희준 씨 관련 유머글 때문에 인기 블로그로 통했습니다. 요즘은 방문자가 전혀 없더라구요.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하지요. 요즘은 문희준 씨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엠파스 블로그에 있는 글 중에서 재밌는 것들을 좀 옮겨오려고 합니다. 4, 5년 전 글이라 제가 썼지만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네요.

    때는 지금으로부터 8일전 지난주 토요일. 저는 아침 일찍 스포츠 센터에 가서 스쿼시를 하고 집에 와서 아침도 못 먹은 채 교회에 가져갈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어린이반 선생님을 맡고 있는 터라 그 날 만들기 시간에 할 재료를 챙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만, 급하게 칼질을 하다가 검지 손가락에 상당한 데미지가 가해졌습니다. 마치 수박을 잘라 빨간 속이 보인 것 처럼, 손가락의 살이 썽큼 잘라져서 피가 쉴새없이 쏟아졌습니다. (약간 오바해서) 휴지 두루마리 하나를 다 쓸 때까지 피가 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마치 헌혈을 한 듯 했습니다. 피는 얼마뒤에 멈췄지만 워낙 내상이 깊은 터라 반창고를 2중으로 해야했고, 손가락이 다른 곳에 스치기만 해도 너무나 아팠습니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쓸 수 없게되니까 정말 불편하더라구요. 우선 운전을 할 때 왼손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속도도 못냈고, 왼손으로 물건을 들 때 힘이 잘 안들어갔고, 무엇보다도 샤워을 할 때 왼손을 쓸 수 없다는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되기 때문에 얼마나 조심했는지. 게다가 운동할 때 땀이 스며들까봐 신경쓰느라고 집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반창고도 수시로 바꿔줘야 하고. 거기에다가 손가락이 불편해서 키보드를 잘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에서 유일한 '펌'테마인 웃는세상에만 글을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머리 속에는 블로그에 남기고 싶은 말이 산더미인데 몸이 따르지 않아서 못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며칠 지나니까 아애 단념하는데 익숙해 졌지만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후시딘 자주 발라주고 반찬고 자주 갈아주고 하니까 어느새 왼손 검지에 '수박 껍질'이 덮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기쁜 마음으로 드라이브도 나가고 오늘은 글도 남기게 되었네요. 평소에 오른손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살았지만, 왼손 검지가 이렇게 소중하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매일같이 왼손 검지로 키보드 자음을 치고 있으면서 까마득히 이 검지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손가락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상 때에는 아무렇지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막상 없어지거나 고장났을 때 얼마나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나사 하나가 빠지거나 부품 하나가 고장났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시아를 넓혀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없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작은 것의 소중함은 더욱 절실해 집니다. 만약 청소부 아저씨가 없어진다면 길거리에 담배꽁초와 과자봉지로 넘쳐날 것이고 동사무소 직원이 없어진다면 주민등록 등본은 누가 떼어줄까요.

    우리는 너무 작고 별 하는 일 없이 보여서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것들이 사라진다면 불편해서 하루라도 살 수가 없지요. 자동차에서 냉각수가 엔진, 핸들, 백미러 보다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낼 순 없지만, 막상 장거리 여행에서 냉각수가 없다면 자동차는 폭발해 버립니다. 항상 모든 것에 신경을 쓸 수 있수 있지는 않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청에 시장이 없어진다면 시청업무가 마비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청소부 아줌마가 없어진다면 시청 화장실이 마비될게 뻔합니다.

    거기에다가 검지 손가락이 다쳤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만약에 가운데 손가락이 다쳤다면 얼마나 미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또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다쳤다면 정말 불편해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어려움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손이 없고 팔이 없는 분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조금이나마 경험을 해보게 되니까 그 분들은 '이 나라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다친 통에 1주일이 불편했지만, 그것 때문에 많이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ps.
옛말에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라는 속담이 있어서 부모님의 평등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요.
꼭 이런 사람 있잖아요. "아프긴 아픈데 좀 차이가 난다." 이런 분들 한 번 손가락에 칼질 해보세요. 미치도록 아픕니다. 아픈데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생물학적으로 살펴보면...  감각은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의 자극이 생기면 동일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칼에 의한 손상같이 상당한 타격에는 모든 손가락이 똑같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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