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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머스 칼럼] 영국의 크리스마스

BigGun 2008. 12. 25. 03:55
2003년 크리스마스로 기억됩니다.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가 개봉된 크리스마스였지요.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6쌍의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 '내 생에 어쩌구'가 개봉되기도 했지요. 아무튼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 언저리가 되면 '나홀로 집'에 이은 크리스마스용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곳 영국입니다. 영국 중에서도 런던입니다. 영화를 유심히 보게 되면 영국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풍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하며,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있는 선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난리법석을 떱니다. 각 나라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상징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종각처럼요. 아마도 영국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네셔널 갤러리 앞의 트라팔가 광장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펼쳐지는 초대형 크리스마스 점등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 광장 정도로 비교할 수 있겠네요. 영화 중간에 얼핏 보여준 것 같습니다. 올해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으려 했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확실히 영국에 있다보니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마치 한국의 구정 같은 느낌이 들정도입니다. 영국의 정간지인 더 타임즈도 일년 중 딱 하루 크리스마스에만 발행을 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언론들이 비판하기도 했지만, 영국의 대표적 백화점인 해롯에서는 이미 9월부터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상품을 팔기 시작했고 대다수의 대형 체인들도 11월쯤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습니다. 사람들도 아주 들뜬 분위기입니다. 영국은 참 카드문화가 발달된 것 같습니다. 카드 전문점이 있을 정도입니다. 카드 종류도 아주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카드값이 결코 싸지 않습니다. 가장 싼 것이 1.5파운드 정도이니 한화로 3천원이니까요. 평균적으로 카드 한 장에 4, 5천원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카드 덕분에 사람들은 카드 주고받는 것을 아주 즐겨합니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더 하지요. 카드가 어느 정도로 세밀하냐면,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여동생, 남동생 등등 각각의 가족을 위한 카드가 따로 나와있습니다. 심지어 사위와 며느리를 위한 카드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경영상 문제로 휘청휘청한 영국 우체국도 이번 12월 만큼은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되었던 우체국 민영화가 요즘 영국 산업의 최대 이슈입니다. 매년 엄청난 손실을 내고 있는 영국 우체국 주식의 33%를 네덜란드 기업 TNT에 팔 계획을 정부가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는 노조 중에서 우편노조가 아주 강력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보수당과 노조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첨예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전통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인만큼 동네의 상징과 같던 우체국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 요즘은 영국 사람 모두에게 경제 위기와 더불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2월 만큼은 모두가 활기차게 카드와 선물을 보내면서 분위기 전환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영국의 크리스마스 전통이라고 한다면, 여왕의 크리스마스 대국민 담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오후 3시에 전국에 방영되는 대국민 담화는 여왕이 국민들에게 보내는 새해 메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런 것이 있다고 들었을 때는 여왕이 버킹검 궁 앞에서 생방송으로 연설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은 그것과 달랐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루전 그러니까 오늘 궁전 안에서 사전 녹화가 이뤄졌고, 내일(크리스마스 당일) 오후 3시에 방영이 된다고 합니다. 여왕이 공식적으로 전국민에게 노출되는 날은 아마도 1년에 세 번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6월경에 있는 여왕의 생일, 두번째는 의회 개원식, 그리고 크리스마스 연설입니다. 최근에 의회 개원식이 있었는데, 그 때도 여왕이 전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연설은 정부가 써준 것을 그대로 읽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영국의 여왕이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은 다 아실테지만, 나름 여왕의 역할이 있긴 합니다. 정치적 결정권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의회 개원이라던지 새로운 법안의 승인은 여왕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여왕은 승인을 해야합니다. 마차를 타고 의회에 도착한 여왕과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의 행렬은 마치 17세기의 왕국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대국민 담화는 정부에서 써준 것이 아니라 직접 여왕의 의견의 담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주 흥미롭다는 것입니다. 아직 본 방송을 보지 않았지만, 뉴스에 보도 된 것에 의하면, 최근 영국 국민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경제 위기와 대기업의 부도에 대해 언급을 했고, 인도 폭탄테러와 같은 전세계적인 테러위협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이런 정치, 사회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올해는 이 밖에도 대국민 담화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오늘 담화문을 녹화한 장소는 버킹검궁의 음악방인데, 이 곳은 상징적인 의미가 없는 장소가 아니라고 합니다. 예전에 했던 곳과 비교했을 때도 시시하구요.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연설이 진행되었는데, 피아노 위로는 찰스 왕세자의 젊의 시절 사진 등이 보였습니다. 이 음악방에서 연설을 녹화한 가장 큰 이유는 올해 60세 생일을 맞이한 찰스 왕세자가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모로 미운털 박힌 아들이라 할지라도 아들 사랑은 어머니를 따를 사람이 없는가 봅니다. 이 연설은 크리스마스 3시에 영국의 대표적 지상파 방송인 BBC와 ITV를 통해 방영되고 올해는 유튜브를 통해서는 방송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작년의 경우는 총 760만명이 시청을 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대통령 담화와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아무튼 21세기에 왕실제도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중심에 여왕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은 참 재밌는 나라입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구정과 비교될 만큼 큰 명절인 만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우리나라와 상당히 대조되는 광경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럴 때 일수록 가게가 문을 열어서 매출을 높이는데 힘을 기울이는데, 영국의 가게는 문을 닫아 버립니다. 크리스마스 당일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곳은 동네마다 있는 펍(PUB, 선술집) 정도라고 합니다. 비단 크리스마스 뿐만이 아닙니다. 일요일에는 가게 문을 훨씬 일찍 닫고 공휴일에도 문을 닫는 가게가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런 영국 사람들의 사고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서비스 산업이 발달된 나라라는 점에서 어느정도 수긍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라다 보니까 그들이 쉬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융 산업으로 먹고 사는 영국인 만큼 휴일을 지키는 것은 더욱 철저합니다. 영국의 공휴일은 '뱅크 할러데이(Bank Holiday)'라고도 하는데, 말그대로 은행이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재밌게도 영국은 공휴일을 항상 월요일로 지정합니다. 즉 토일월 3일 연속 쉬라는 의미지요. 우리나라 처럼 공휴일이 일요일에 걸려서 생략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예전에는 뱅크 할러데이에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지만 요즘은 은행만 빼고는 대개 가게들이 문을 엽니다. 하지만 뱅크 할러데이와는 다르게 날짜 그대로를 지키는 크리스마스에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습니다. 재밌는 것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박싱데이(Boxing Day)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을 뜯어서 확인하는 날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 되어야 겠지요? 그런데 만약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라고 한다면 박싱데이는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로 바뀝니다. 일요일에 휴일이 묻혀 가는 꼴을 못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올해 같이 크리스마스가 목요일이나 혹은 월요일에 있는 경우가 최고의 휴일이라고 합니다. 토일까지 합쳐서 연달아 4일을 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올해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주요 뉴스가 경제 위기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의 오프라인 레코드점인 자비(ZAVVI)가 부도처리가 되었다는 소식이 톱뉴스였습니다. 전국에 70개 정도 체인점을 보유하고 있는 이 대형 레코드점은 한국의 신나라 레코드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종업원이 1500명 정도라고 하니까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지만, 안그래도 심란한 영국인들 마음에 자비의 도산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최근에는 영국의 대형 소매점이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울월스(Woolworth)입니다. 슈퍼마켓과 비슷한데 식품류는 팔지 않는 곳입니다. 사무용품이나 장난감 등을 주 품목으로 팔던 이 소매점은 올해로 역사가 99년이나 됩니다. 전국에 매장이 수백개가 되고 고용인원도 자비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이지요. 그런데 이 대형 체인이 얼마전 부도처리가 되었습니다. 영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입니다. 한국으로치면 모닝글로리가 망한 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때 영국의 경제난이 있었던 70년대에 실업자가 3백만에 육박했다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그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최근들어 다시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로는 160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금융발 위기였지만 재무구조가 튼튼하지 못한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들 기업이 망한 이유는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울월스 같은 경우는 70년대의 시스템 그대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최신 소매 체인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자비의 경우도 가장 큰 경쟁자인 온라인 마켓을 부도의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정품 CD를 애용하는 영국인들이지만 한 푼이라도 싼 온라인 사이트를 더 많이 애용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은 경기였다면 이들 기업이 더 오래 갈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장 소비를 줄이는 CD, 책, 의류, 장난감 같은 품목을 파는 회사들은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희생양이 울월스와 자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영국 최대의 휴일,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모든 기업들이 이 시즌을 매출 확대의 최대 기회로 이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일단 테스코와 아스다 같은 대형 마트들은 저렴한 가격을 모토로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냈습니다.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은 크리스마스 식탁이 단 돈 20파운드 이런식으로 말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책과 음반 광고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추천을 하면서 심지어 반 값에 책과 음반을 팔고 있습니다. 음반의 경우는 싱글이나 신곡 앨범 보다는 기존 유명곡들을 섞어서 파는 종합세트 같은 앨범이 인기입니다. 옷가게들 역시도 엄청난 세일을 시작했고, 유럽 최고의 세일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크리스마스 세일은 박싱데이 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아마 백화점들은 크리스마스에 문열어 놓고 상품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이와 더불어 많은 광고가 나오는 것이 게임기입니다. 위나 닌텐도DS, PSP, 엑스박스의 광고가 쉴새 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히트는 가히 기록적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건전한 게임 컨셉인 위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물건이 다 떨어져서 광고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하네요. 이런 분위기 속에 소비가 진작되어서 영국의 소매금융이 숨통을 틔였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입니다. 영국 정부는 얼마전 부가가치세를 17.5%에서 15%로 1년간 낮추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비가 위축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우리나라도 어렵다 어렵다 해도 구정이나 추석 때 만큼 온가족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덕담을 하지 않습니까? 영국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제 대형 마트에 가보니 물건이 없어서 못 살 정도고, 가족 단위로 쇼핑을 나와서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부터 약 4일간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까딱 잘못해서는 4일간 굶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음식이라고 한다면 민스 파이(Mince Pie)입니다. 파이 안에 달콤한 시럽이나 과일을 넣은 것인데, 엄청나게 답니다. 대개 유럽의 크리스마스 음식이 답니다. 얼마전에는 체코의 크리스마스 쿠키를 먹었는데 거의 설탕 덩어리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단 음식을 즐겨 먹는 것 같습니다. 대형 마트를 비롯해서 선물가게의 대표적인 선물 상품은 단연 초콜릿입니다. 온갖 종류의 브랜드들이 전시되어 있는 코너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런 초콜릿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 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간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BBC에서는 12시가 되자 영국 국교회의 크리스마스 특별 예배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많이 쇄락했다고 하는 영국이지만 영국 여왕이 국교회의 수장으로 여겨지는 나라인 만큼 이런 명절 때는 예배실황을 보여줍니다. 이 예배에 대한 정보는 듣지 못했지만 화면을 유심히 보니 다이애나 공주의 장례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예배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엄숙한 가운데 진행되는 예배를 보고 있으니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영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작년에는 대만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올해는 영국인데요, 뭐니뭐니 해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해야 합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늘 교회에서 부를 특별 찬양 연습을 하고 홈메이트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노래를 부르면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습니다. 콩고와 짐바브웨에서는 기아에 허덕이고,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경제난으로 많이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 지금 영국의 한 따뜻한 플랫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일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2009년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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